장식용 고무신을 폰에 담았습니다. 지금에서 되돌아보면 고무신은 1960~1970년대 추억의 상징입니다.
경남 진해에 있는 사설 식물원 '보타닉뮤지엄' 화단 가장자리에 나란히 나란히 진열된 고무신들입니다. 앙증맞은 아이 것과 큼지막한 어른들 것도 있네요.
수십 년 전 한 땐 아이들에게 명절 선물 '꼬까신(예쁜 신발)'으로 최고 인기였습니다. 부모님이 읍내 장날 사오신 '하얀 고무신'이었지요. 반면 '고무신 선거'라고 불법선거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방송에서 보니 시골 장터 가게에 들른 어르신이 오천 원에 사 신곤 "딱 맞다"고 하시길래 아직도 더러 신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온라인 어느 곳에서 '세계적인 패션 신발 조선의 나이키'란 문구를 보곤 "맞다"며 무릎을 탁 치기도 했습니다.
고무신은 고무로 만든 신발입니다. 통고무 신발이지요.
고무신은 1920년대 국내에서 공급됐다고 하네요. 양반들이 신던 가죽신인 '당혜'의 디자인을 차용했습니다.
당시 조선 최대의 고무신 제작사인 '대륙고무'에서는 순종황제가 신어 보고 편하게 여겼다며 광고를 했다고 합니다. 일반인이 신던 짚신에 비하면 고무신은 훨씬 오래 신고 편안했던 고급 신발이었습니다.
이후 부산은 국내 신발산업의 중심지로 고무신을 생산해 전국에 공급했지요. 부산은 지금도 세계적인 운동화 생산 기지입니다. '한국의 나이키' 고무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신발 생산지로 탈바꿈했습니다.
한동안 대중적인 신발로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이후 운동화와 구두, 슬리퍼에 밀려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었지요.
어느 세대나 잘 신지 않아 시골 읍내 시장의 신발 가게에서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골의 어르신들, 사찰의 스님들만 신을 정도로 귀한 신발입니다.
교도소의 재소자들도 한 때 고무신을 신었는데 지금은 끈이 없는 운동화를 신는다고 하네요.
이런 고무신이 최근 젊은이들에게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네요.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며 '촌스러움'을 가치로 삼는 시대풍 영향입니다. 캐주얼한 고무신은 온라인 숍에서 사고, 하이엔드 고무신은 공방에서 구한답니다.
옛날 고무신은 하얀색과 검은색이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파란색, 노란색, 보라색, 녹색 등 다양합니다. 카페 등 가게나 야외 정원 장식용으로 많이 이용되고 특별히 사놓고 멋으로 신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10만 원 정도의 장식 고무신도 있다고 합니다.
'검정고무신'으로 상징되는 고무신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다녀왔습니다.
진해보타닉뮤지엄은 경남도 제1호 사립수목원입니다.
장복산 중턱에 위치해 뒤로는 천자봉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앞으로는 진해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사계절 나무와 꽃, 단풍, 열매 등이 어우려져 아름다운 풍경을 순서 있게 연출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