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적발해 지난달 27일 발표한 선거관리위원회 고위직 자녀·친인척 채용 비리 행태를 보면 쫙 벌어진 입을 닫을 수 없을 정도다.
단순 수치로만 보면 신입·경력 등 전체 채용 분야에서 총 878건(시도선관위 662건, 중앙선관위 216건)의 규정 위반을 했다. 내용을 보면 구린내는 더 격하다. "어느 누가 감히 날 건드려!"란 말이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을 지경이다.
감사원은 서울시선관위를 포함한 7개 시도 선관위의 전 사무총장과 차장 등 32명을 중징계할 것을 요구했다.
경남 의창구 용호동에 있는 경남도선관위 건물 전경. 독자 정재송 씨 제공
일회성, 일과성이 아니라 수십 년을 저렇게 비리를 자행해 왔다. 그것도 민주화가 돼도 삼세 번을 더 됐을 세월에 단 하나도 바뀐 게 없을 정도였다. 선관위가 무엇을 하는 데인가? 국민들은 다 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를 감시하고 관리하는 곳 의자에 엉덩이를 깊숙이 꽂고서 권력에 취해 '도끼자루 썩는 줄'을 몰랐다. 멍청하다는 말밖엔···.
초기 민주화 때처럼 위원장부터 팀장까지 곤장으로 볼기장을 수십 대씩 내리쳐야 화가 풀릴 정도다. 정신을 차릴 때까지 악 소리 나도록 주리를 틀어야 한다.
이래도 분이 풀리지 않을 듯하다.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오는 그 시점에 보란 듯 헌법재판소에다 감사 권한쟁의 심판까지 제기했다. 뻔뻔하다.
헌재 재판관들이 누구인가? 10명 중 8명이 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했다. 무식했던 기자의 할배가 계셨다면 "저 자슥들, 기도 안 안 차다. 사람도 아이다"라고 했겠다. 대명천지에 뻔뻔스러움이 저 정도일 순 없다.
비리 행태들을 대충이나마 살펴보자.
선관위에 근무하는 이들의 비리 행태는 모두 가족 인연, 지연, 함께 근무한 인연을 악용해 일어났다. 지역 선관위 근무 때 형성된 인연을 통해 자녀·친인척의 채용을 청탁하거나 지시하고, 후배 공무원들이 여기에 호응했다는 것이다. 전방위 총체적이다.
이렇게 연이 맺어진 이들은 감사원 등 외부 감시 움직임에 파일 조작, 문서 파쇄 등으로 조직적으로 대응했고, 너들이 조사할 자격이나 있냐는 식으로 도도한 대응을 했다.
비리 행위 과정에서 서로 간에 "너도 공범”이라고 말했다니 소위 말해 별짓을 다했다. 뒷골목 깡패집단과 진배없는 수준이다. 일부는 부정채용 수법을 사실상 '매뉴얼'로 만들어 공유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박찬진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고향인 광주에서 선관위 공무원 경력을 시작해 광주선관위 관리과장을 거쳐 중앙선관위에서 장관급인 사무총장에 올랐다.
그가 사무차장이었던 2022년 1월 전남선관위가 경력직 채용을 공고했고, 당시 광주 남구청 직원이던 박 전 총장의 딸이 지원했다.
전남선관위는 면접 위원들에게 '점수란'을 비워둔 점수표를 내게 했고, 여기에 박 전 총장 딸 등 ‘합격 내정자’들이 합격하도록 점수를 써 넣었다.
전남선관위 직원들은 이 부정 채용 수법을 “★서류전형+면접 팁.txt”라는 파일에 적어 공유하다가 감사원 감사가 시작되자 문제가 될 부분을 다른 내용으로 덮어씌웠다.
그러고는 직원들 간에 서로 "너도 이것(파일)을 수정했으니 공범"라며 비리 동업인임을 주입시켰다.
김세환 전 사무총장도 고향인 인천 강화군청 공무원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해 강화군선관위로 소속을 옮겼다. 이후 상급 기관인 인천선관위 관리과장을 거쳤다.
중앙선관위는 그가 사무차장이던 2019년 10월 인천선관위에 인력 소요가 없는데도 경력직 채용을 했다. 김 전 총장과 마찬가지로 강화군청 공무원이었던 김 전 총장 아들이 지원했다.
인천선관위는 면접 위원 전원을 김 전 총장과 함께 강화군·인천선관위에서 근무했던 직원들로 구성해 김 전 총장 아들을 강화군선관위에 채용했고, ‘5년간 다른 선관위로 이동 금지’라는 애초 채용 조건을 1년도 안 돼 풀어줘 인천선관위로 다시 옮길 수 있게 했다.
송봉섭 전 사무차장은 충남 태안 출신으로 충청 지역의 선관위에서 근무하다가 중앙선관위 고위직으로 발탁됐다. 2018년 충북선관위가 경력 채용을 진행하자 충북선관위에 전화를 걸어 충남 보령시청에서 근무하는 딸을 “착하고 성실하다”며 추천했다.
충북선관위는 아예 송 전 차장 딸만을 대상으로 하는 ‘비(非)다수인 경쟁 채용’을 했다.
또 서울선관위는 신 모 전 서울선관위 상임위원의 아들인 경기 안성시 직원이 자격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서울선관위 직원으로 채용했다.
경남선관위는 당시 총무과장이었던 김 모 부이사관(3급)의 딸(의령군 직원)을 경남선관위 공무원으로 뽑기 위해 면접 점수를 조작했다.
경기선관위도 2022년 과천시선관위에서 사무과장을 지낸 뒤 갓 정년퇴직한 A 씨의 사위가 경기선관위 채용에 지원한 것을 알고 A 씨 사위를 자격이 안 되는데도 뽑았다.
충북선관위에서는 청주시선관위 국장의 자녀를, 경북선관위에서는 전 경북선관위 서기관(4급) 자녀를 뽑기 위해 부정을 저질렀다.
더 기가 찬 건 중앙선관의 '비리 앞의 근엄함'이었다.
고위직 부정 채용 상당수가 내부에서 중앙선관위로 고발 등 투서가 들어갔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 인사 담당자들은 상관이나 지역 선관위의 지인들이 연루된 이 사건들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덮어버렸다.
이에 감사원은 지난 2023년 6월 선관위 인사 비리 감사를 시작했다. 이들 비리들이 포착됐다.
하지만 사무총장·차장 등 선관위 최고위직들은 "문의 전화는 했지만 채용 청탁을 하지는 않았다"는 등의 말로 혐의를 부인했고, 직원들도 청탁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상황이 바뀐 것은 감사원이 지난해 4월 중간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사건을 검찰에 넘긴 뒤였다.
이 때부터 선관위의 조직적안 저항이 시작됐다. 감사원이 헌법 독립기관인 선관위에 직무 감찰을 할 수 없다는 법률적인 대응에 나섰다. 큰 논란이 됐다. 헌재에 판단을 해달는 권한쟁의도 했다. 선관위가 이겼다.
하지만 감사원의 감사에서 이들의 비리 행태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부정 채용에 가담했던 지역 선관위 직원들이 감사원에 고위직들의 부정 청탁과 지시를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직원들이 자기가 모든 죄를 뒤집어쓸 상황이 되자 선배의 부정행위를 줄줄이 증언했다”고 했다.
선관위는 감사원에 이겼지만 국민들에게 졌다.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한 것이다. 바보, 등신처럼 졌다.
이제 감사원, 검찰 등이 아니라 국민들이 상시 감시에 나선다. 선관위는 앞으로 정말 조심해야 한다.
순둥이 소의 뒷발질 강도는 사람이 사망할 정도로 세다. 소를 키워본 사람은 아는 사실이다. 평소 순둥이 같은 백성들은 성(화) 나면 뒷발질하는 소보다 더 겁난다.
평소 잔잔하던 파도가 집채만해지면 배를 삼킨다. 백성이 화나면 임금을 끌어내린다고 했다.
법의 맨 꼭대기 심판대에 있다고 으스대다간 그 심판대에 자신이 선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단두대'란 게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