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중하순부터 전국 밤 산지의 밤나무에 달린 밤송이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해 재배농가들은 한 달여 밤 줍기로 바빴습니다. 더경남뉴스의 정기홍 편집인이 10월 중순 경남 진주의 밤 생산지에서 3일간 밤을 줍는 체험을 했습니다. 하루에 8시간을 꼬박 채우는 강행군이었습니다.
우선 준비물을 살펴보겠습니다.
밤송이엔 가시가 있어 두꺼운 고무장갑을 꼭 끼어야 합니다. 두껍고 둔탁해 보이는 고무장갑인데, 한 면에 고무 물질을 바른 속장갑(면장갑)을 먼저 끼고서 고무장갑을 낍니다. 이중으로 가시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방편이지요.
당연히 밤을 주워 담을 비료 부대도 필수입니다. 안쪽을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물론 다른 담을 것도 이용 가능하지만 비료 부대가 안성맞춤입니다. 그 이유는 밤을 줍는 단계에서 설명하겠습니다.
준비물은 더 있습니다.
산속에는 모기가 무척 많아 뿌리는 모기약이 필요합니다. 또 목이 마르거나 허기가 질 때 마시고 먹을 생수 2~3통과 삶은 계란 등 간식이 필요합니다.
준비가 대체로 됐으니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밤을 줍는 과정입니다.
위의 사진처럼 땅의 밤송이는 며칠 전에 떨어진 것과 갓 떨어져 푸른 기가 있는 것이 섞여 있습니다. 밤송이를 일일이 살펴보고서 안에 밤이 있으면 까서 부대에 넣습니다. 땅에 따로 떨어진 밤은 바로 줍습니다.
여기서 왜 비료 부대가 요긴한 지를 설명 드리겠습니다. 편리함 때문입니다.
처음 밤을 주울 때 비료 부대의 맨 위를 접혀 부대를 반 정도로 작게 만듭니다. 이래야만 허리를 굽히고 이동하는 밤 줍는 일의 특성상 주운 밤을 보다 빨리 부대에 넣을 수 있습니다. 밤의 양이 점점 차면 접었던 부분을 조금씩 펴면 됩니다. 일의 동선을 줄이는 방법이지요.
이처럼 밤 줍는 요령이 필요합니다. 오랜 경험이 쉽고 성과를 더 내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이겠지요. 실제 같이 주운 주인들은 같은 시간에 기자보다 훨씬 많이 주웠습니다. 평소 '농삿일 아무나 하면 되지' 생각을 했는데 '뻘줌함'을 제대로 경험한 오판이었습니다.
완전히 익지 않은 밤송이도 떨어져 있습니다.
익은 밤은 진한 갈색인데 덜 익은 밤은 연한 갈색이거나 살색을 띱니다. 덜 익은 밤은 바로 먹으면 되지만 오래 두면 말라서 수축됩니다.
이 밤 재배농가 주인의 말을 빌리면 밤은 '청밤(일본 밤 개량종)'과 '일반밤'이 있다더군요.
청밤은 밤의 껍질이 단단하며 보슬보슬한 하얀 털이 겉에 있고, 일반밤은 털이 없이 매끈하고 줄무늬가 보입니다. 일반밤은 바로 줍지 않으면 밤벌레가 밤에 구멍을 내 상품성이 전혀 없어집니다.
기자는 청밤과 일반밤을 구별하기란 좀 어려웠습니다. 바로 아래의 밤은 청밤입니다.
줍는 방법이 있습니다.
밤 줍는 방식을 모르는 분들은 옛날 사진과 그림에서 보던 것처럼 장대로 나무에 달린 밤송이를 터는 것으로만 알지만, 요즘은 거의 바닥에 떨어진 밤송이를 까거나 밤송이에서 튕겨져 나온 밤알을 줍습니다.
고무장갑은 가시에 찔림을 피하고 줍기에 편합니다. 망개 덤불의 가시 등 산에는 가시나무가 많아 걸려 찔리기 일쑤여서 가시 덤불이나 나무를 꺾어 치우는데도 요긴하게 사용되지요. 다만 공기가 잘 통하지 않고 땀이 속장갑에 스며들어 축축해집니다.
아래 사진은 좀 징그러운 사진입니다만 땅에 떨어진 밤송이 안에 작은 지네가 있었습니다. 사진에는 크게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새끼여서 놀라진 않았고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을 줍기 전 한여름에 밤나무 밑에 난 수풀을 예초기(刈草機·풀베는 기계)로 베냅니다. 더운 여름에 하니 땀을 좀 흘려야 하는 작업입니다. 옛날에는 가끔 뱀도 발견됐다는데 요즘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밤산엔 밤이 수없이 땅에 떨어져 있으니 밤엔 불청객이 찾습니다. 멧돼지가 내려와 닥치는대로 먹어치웁니다. 밤 재배농가의 고충이라고 합니다.
밤 재배농가에선 집에서 키우는 개를 산에 옮겨놓는다든가, 녹음된 포탄 쏘는 소리나 음악을 틀지만 멧돼지가 꽤 영리해 한두번은 속지만 그 다음부턴 속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멧돼지 견제 세력을 이동시키든가 바꿔줘야 합니다.
다음의 밤송이 모습을 보면서 찡그렸던 얼굴 표정 푸십시오. 앙증맞고 탐스럽네요.
밤산엔 자연 그대로의 모습도 참 많습니다.
아래 사진은 당화(棠花)인 듯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해당화, 산당화를 말하는데 꽃나무에 관해선 과문해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다음은 복을 가져다준다는 두꺼비입니다. 밤 줍는 부스럭 소리에 잠시 '사주경계(四周警戒)'를 하더니 엉금엉금 기어 달아나는 모습을 찍었습니다.
두꺼비의 아지트(근거지)를 헤집었다는 생각에 잠시 미안함을 전하고, 이날의 본업인 밤 줍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기자가 하루에 주운 양은 알밤으로 4부대 정도입니다.
이상 밤산에서의 작업은 끝이 납니다. 하루 종일 허리를 굽혔다 폈다 했더니 허리가 뻐근합니다. 하지만 수확의 풍족함이 더 와닿더군요.
부대에 주워 담아온 밤은 마당에서 밤 분리 기계를 돌려 분류를 합니다.
청밤과 일반밤은 사람이 골라내야 하지만, 크기는 기계를 돌리면 자동 구분돼 각 상자로 떨어집니다.
아래 상자 안의 밤은 청밤에다 최고 큰 밤이며 최상품입니다.
이렇게 여러 힘든 과정을 거친 밤은 밤 상점에 내거나 지인들에게 팝니다.
밤 상점에 내면 가격이 상대적으로 쌉니다. 일반밤도 섞여서 그렇다고 합니다. 개인 루트로 팔면 서로가 믿을 수 있고, 최상품으로 거래를 해 비싸게 팔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반밤이 1kg에 2000원대라면 최상품 청밤은 5500원에 팔린다고 하더군요.
밤의 생산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했습니다. 줍는 과정은 비탈진 밤산에서 반복해서 허리를 굽혔다 펴야 하고, 모기에 물리고, 밤송이 가시에 찌리는 등 지난한 고통이 따릅니다.
밤을 사먹을 때 생산 농업인들의 이 가은 고생을 생각하면 밤맛의 가치가 더하겠습니다. 대체로 길가나 행사장에서 파는 군밤은 중국산이라고 합니다. 국산 밤보다 아주 작습니다.
기사가 나가고 나서 기자가 함께한 밤 재배농가에서 다른 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밤 줍기가 끝난 지금도 밤나무에는 푸른 밤송이가 많이 달려있답니다. 하지만 거의가 쭉정이라고 합니다. 다음 두장의 사진입니다.
지금까지 밤을 줍고 상품이 되는 과정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