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먹고 살만한 요즘은 '건강정보 홍수' 시대입니다. 건강 상식과 식품은 범람하고, TV에선 의사 등 전문가들이 자기 말대로 안 하면 곧 큰병에 걸릴 듯 엄포를 놓습니다. 이즈음 옛 선인들의 건강 지혜를 찾아봄직합니다. 조선시대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이 전하는 건강 상식을 연중 기획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이번의 [동의보감 건강 이야기] "자주 성을 내면 감정을 상한다"(7)는 앞서 소개한 "희노(喜怒)는 지(志)를 상하게 한다"(6)과 비슷하지만, 한번 더 나눠 다루는 것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마음(감정)을 '칠정(七情)'으로 정의합니다.
칠정을 풀이하면 사람이 가진 '7가지의 기본적인 정(情)'을 말합니다. 정(情)의 사전적 뜻은 '느껴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예컨대 '정이 많다'는 좋건 나쁘건 '느낌의 마음'이 많다는 것이지요. 다만 좋은 뜻으로 많이 씁니다.
먼저 칠정이 무엇인지를 알아봅니다.
중국 공자의 학문인 유학(儒學)에서는 칠정(七情)을 희(喜-기쁨), 노(怒-분노), 애(哀-슬픔), 락(樂-즐거움), 애(愛-사랑), 오(惡-증오), 욕(欲-욕심)으로 분류합니다.
달리 중국 고대 유교경전으로 사람이 갖춰야 할 예의를 기록한 '예기(禮記)'에서는 칠정에 '락(樂)' 대신 '구(懼)'를 넣습니다. 구(懼)는 '두려움, 걱정'을 뜻합니다.
예기에서는 사람의 칠정은 배우지 않아도 능(能)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능하다'는 것은 몸과 정신을 지배한다는 말입니다.
칠정의 감정은 평상시 우리 몸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우울증, 공황장애, 불면증 등 마음으로 인한 병은 모두 칠정에서 비롯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거꾸로 평소에 이 7가지의 감정을 잘 다스리면 몸에 선한 영향을 미쳐 병이 걸리지 않고 설령 병에 걸려도 낫게 합니다.
그런데 이 칠정은 혼자 놀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칠정이 일어나면 이어 육욕(六慾), 즉 6가지 욕심이 생긴다고 합니다.
6가지 욕심이란 ▲먹고 싶고 ▲맛 보고 싶고 ▲보고 싶고 ▲듣고 싶고 ▲냄새 맡고 싶고 ▲만지고 싶은 것입니다.
따라서 '칠정(七情)'과 '육욕(六慾)'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병에 걸리는 것은 칠정과 육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어느 한 곳이 넘치고 지나쳤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몸에서 음(陰)과 양(陽)의 균형이 깨지고, 기(氣)와 혈(血)의 흐름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정신이 혼란하고 몸의 상태가 좋지 않게 돼 병이 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을 부지불식간에 자연 섭리에, 인륜에 거슬러 삽니다. 이래서 병치레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칠정 육욕'을 잘 다스리면 병에 잘 걸리지 않고 걸린 불치병, 난치병도 나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오늘의 타이틀인 "자주 성을 내면 감정을 상한다"를 알아봅니다.
칠정(七情) 중 '노(怒')는 '노할 노'입니다. '성(화)을 내는 것'입니다.
동의보감에서는 칠정의 7가지 감정은 모두 사람을 상하게 한다고 봅니다. 이 중에서 성내는 것이 제일 심하다고 봅니다. 한 한의사는 "성낸다는 것은 나무가 땅에서 한순간 불쑥 솓아 나오는 것과 같다"고 말하더군요.
참고로 화를 내는 순간 뇌에 피가 쏠리고 뇌의 혈류량은 6초 만에 절정에 이릅니다. 분노로 올라간 뇌의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대략 1시간은 걸려 뇌 건강에 매우 좋지 않습니다. 화를 내면 스트레스 호르몬도 더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일상에서 자주 쓰는 "화가 나 죽겠어"라는 말을 분석하면 깊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이 말은 '화=죽음'을 뜻합니다. '화를 낼수록 수명 짧아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더 구체적으로 알아봅니다.
동의보감 내경편의 '신(神)'에는 '간(肝)의 지(志)는 성냄이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지(志)는 뜻 지로 '연고(緣故·일의 까닭)가 있다'는 뜻입니다. 장기인 간의 건강은 성(화)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말이지요.
내경편에서는 성을 갑자기 내면 몸의 음(陰)을 상(傷)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의 음은 몸의 안쪽, 장기를 말합니다.
성을 지나치게 내면 기(氣)의 흐름이 끊기고, 혈(血·피)이 몸 윗부분인 상초(上焦·심장 바로 아래)에 뭉치면서 자칫 기절을 할 수 있습니다. 또 혈이 상초로 모이고, 기가 하초(下焦·콩팥 바로 위)에 몰리면 가슴이 답답하고 놀래서 성을 잘 냅니다.
또한 성을 내면 기가 올라 치밀고, 심하면 피를 토하며, 삭지 않은 설사를 한다고 쓰여있습니다.
내경편의 주해(註解·본문을 알기 쉽게 풀이)에도 비슷하게 설명합니다.
성을 내면 양기가 치밀어 오르고 간목(肝木·간)이 비토(脾土·지라)를 억누르게 되고, 이어 비토가 상하면 다른 4개의 장기도 상하게 된다고 합니다. 5대 장기는 심장·간장·췌장(비장)·폐·신장)입니다.
즉, 간담(肝膽·간과 쓸개)의 병이 심하면 성을 많이 낸다고 합니다.
다른 서적에서도 비슷하게 진단합니다.
중국의 주희가 지은 사서(史書)인 '강목(綱目)'에도 '성을 내는 것이 음에 있으면, 음에 의해 양이 막혀서 잘 펴지 못한다'고 써놓았습니다. '성을 내면 간목(肝木)이 갑자기 비토(脾土)를 눌러서 비(脾)를 상한다. 따라서 나머지 4개의 장도 모두 상한다'고 부연합니다.
내경편의 주해(註解)와 같은 말입니다.
중국 명나라 때 편찬된 종합 의서(醫書)인 '동원십서(東垣十書)'는 '성을 잘 내는 것은 풍열(風熱)이 땅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풍열은 풍사(風邪)에 열이 섞인 것으로, 발열 또는 오한이 나타납니다. 풍사란 뭉뚱그려 '감기'를 말하는데 바람이 원인으로 작용한 것을 이릅니다.
또한 지비록(知悲錄)에는 '유공도(柳公度)란 사람이 양생(養生·건강 관리를 잘해 오래 살기를 꾀함)을 잘해 나이 여든(80)이 넘었는 데도 걸음걸이가 가뿐하고 건강했다'고 소개합니다. 이에 유도공은 "다른 방법이 없다. 단지 평생 기뻐하고 성을 내는데 신경을 써본 일이 없고 기해혈(氣海穴·배꼽 아래에 있는 경혈) 부위를 늘 따뜻하게 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화를 잘 내는 성정(性情)을 가진 사람은 평소 감정을 다스리는 연습을 꾸준히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불뚝 성질'을 다스리는 것이 몸에 배면 몸과 정신이 훨씬 편해지겠지요. 앞의 유도공의 사례처럼 건강하게 오래삽니다.
선현(先賢·어질고 사리에 밝은 옛사람)의 시에 '일을 당하면 다투지 마라. 성을 내 가슴 속에 불이 심하게 타오르면 온화함을 태워 절로 속을 상하게 한다. 지나고 나면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이라고 했습니다. 한순간 참을성의 중요함을 강조한 말입니다. 그 순간이 지나면 마음이 온화하고 평온해집니다.
성을 다스리는 처방도 소개합니다.
'단심'에서는 버럭 성을 자주 내는 기질에는 향부자(香附子) 가루와 감초(甘草) 가루를 각각 40g을 섞어 한번에 12g씩 끓인 물에 타 먹으면 좋다고 합니다. 향부자는 줄기 잔뿌리를 불에 태워 햇볕에 말려 먹습니다.
향부자는 논밭에서 흔히 보는 방동사니의 뿌리줄기입니다. 주로 기(氣)가 막히고 답답한 것을 치료하는 데 사용합니다.
부인병에 성약(聖藥)으로 통하는데 부인들이 잘 걸리는 홧병(火病)을 비롯해 신경성 위통, 소화 불량에 약재로 씁니다.
동의보감 내경편에 '향부자는 성질은 약간 차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 기(氣)를 세게 내리고 가슴속의 열을 없앤다. 오래 먹으면 기를 보하고 기분을 좋게 하며 속이 답답한 것을 풀어 준다. 통증을 멈추며 월경을 고르게 하고, 오래된 식체(食滯)를 삭게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내경편에서는 '향부자는 부인에게 아주 좋은 약이다. 부인의 성격은 너그럽지 못해 맺힌 것을 풀 줄 모르는 때가 많은데, 이 약은 맺힌 것을 잘 헤치고 어혈(瘀血)을 잘 몰아낸다. 캐서 볏짚 불로 잔털을 잘라 버리고 돌절구에 넣고 찧으면 깨끗해진다'고 설명합니다.
향부자의 구체적인 용도는 기병(氣病)에는 약간 닦아서 쓰고, 혈병(血病)에는 술에 달여 쓰며, 담병(痰病)에는 생강즙에 넣고 달인다고 소개합니다.
하초(下焦·배꼽 아랫부분)가 허약할 때는 소금물에 달이고, 혈이 허해 화(火)가 있을 때는 동변(童便·12세 미만의 사내아이 오줌)에 달여 쓰면 시원해진다고 합니다.
감초야 약용 성분이 다양해 다수의 질환에 효과가 있고 맛도 달콤해 많은 약재에 들어갑니다. '약방에 감초'라는 말이 이런 이유에서 나온 것입니다. 뿌리를 채취해 한약재, 감미료 등으로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