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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법 동부지원 박주영 부장판사의 "자책 말라" 위로에 방청석 눈물바다… 전세사기범에는 최고형 15년 선고

180억 사기범에 법정 최고형
검사 구형보다 2년 많은 큰 형량
탄원서 낸 청년 모두 호명하며 고통 어루만져

정창현 기자 승인 2024.01.25 15:45 | 최종 수정 2024.01.25 16:21 의견 0

부산지법 동부지원 박주영(56·사법연수원 28기) 부장판사가 24일 부산에서 180억 원대 전세사기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50대 여성 A 씨에게 검찰 구형보다 2년이 많은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박 판사는 선고 공판 과정에서 청년 피해자들의 이름을 한명 한명 호명하고, 탄원 편지 사연도 읽어내려가 법정은 눈물바다가 됐다.

박주영 부장판사가 지난 2019년 8월 책 '어떤 양형의 이유'를 펴냈을 때의 모습. 김영사 제공

A 씨는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부산의 원룸 건물 9채 를 사들여 세입자 229명에게 전세보증금 약 180억 원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당초 검찰이 기소한 피해액은 166억 원이었으나 피해가 추가로 확인돼 180억 원으로 늘어났다.

박 부장판사는 A 씨가 ▲처음부터 불법성을 갖고 임대를 한 것은 아닌 점 ▲부동산 시장의 갑작스런 변동성 ▲‘바지 임대인’을 내세우거나 잠적하는 소위 ‘빌라왕’ 부류의 사건과는 다른 점은 정상 참작했다.

하지만 박 부장판사는 ▲임대인이라면 경기나 이자율 변동에 책임을 갖고 대비해야 했지만 하지 않은 점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면서도 현실적으로 회복되지 않은 점 ▲사회에 미치는 해악 등을 고려해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박 부장판사는 “이 사건의 주된 책임은 자기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임대사업을 벌인 피고인에게 있다”고 양형(量刑·형벌의 양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박 부장판사는 선고 과정에서 탄원서를 낸 피해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피해 금액과 내용을 읊어갔다. 일부 탄원서는 전문을 읽기도 했다.

그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차분했지만 단호했다.

이어 박 부장판사가 피고인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뒤 피고인은 퇴장했다.

하지만 박 부장판사는 자리에 남아 방청석에 있던 피해자들에게 잠깐 시간을 내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여러분의 희생이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게 하고 탄원대로 피해를 막는 초석을 세운다는 심정으로 판결문에 피해자들의 고통을 기록했습니다. 조심스럽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탐욕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는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이 여러분과 같은 선량한 피해자를 만든 것이지 여러분이 결코 무언가 부족해서 피해를 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제 돌아가셔도 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의 당부가 끝나자 법정은 눈물바다가 됐다. 일부 피해자는 목례를 하면서 피고인을 엄벌하고 자신을 위로해준 박 부장판사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박 부장판사는 지난해 말 특수협박 혐의로 기소된 50대 노숙인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책과 10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넨 뒤 따끔하면서도 따뜻한 위로를 해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 부장판사는 사회에 울림을 주는 판결문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서 ‘어떤 양형의 이유’, ‘법정의 얼굴들’을 펴냈고 유명 방송 프로그램 출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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