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인 오늘(19일) 새벽에 봄비가 세차게 내렸습니다. 입춘을 지나 대지에 양기가 채워지면서 홍매화가 피고, 봄나물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장마철 비마냥 요란스레 내렸네요.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빗물을 머금은 대지엔 파릇함이 더 선명해지겠지요.

파릇함이 짙어진 경남 진주시 일반성면 보리논. 전날(19일) 내린 빗물이 논 고랑에 가득 고여 있다. 정기홍 기자

옛분들이 봄을 맞으며 필묵으로 주고 받던 고어 덕담 하나를 소개합니다.

'영춘접복 화기치상(迎春接福 和氣致祥)'은 '봄을 맞아 복을 듬뿍 안고, 화사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집안에 가득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영춘접복(迎春接福)은 풀이하면 맞을 영(迎), 봄 춘(春), 이을 접(接), 복 복(福)입니다. 봄을 맞아 복을 듬뿍 받아라는 뜻이 담겼지요.

화기치상(和氣致祥)은 화할 화(和), 기운 기(氣), 이를 치(致), 상서로울 상(祥)으로 '화평한 기운이 상서로움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이 둘을 합쳐 풀이하면 우주의 음(陰)과 양(陽) 기운이 서로 화합하면 그 기운이 어우러져 상서로움(복이 되고 길한 일이 일어날 조짐)을 불러온다는 것이지요.

비슷한 덕담으론 입춘이면 자주 듣고 보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 있습니다. 봄을 맞아 크게 길하고, 따뜻한 기운이 감도니 경사가 많아져라는 뜻입니다.

이와 비슷한 덕담이 더 있지요.

천상운집(天祥雲集)은 '좋고 많음이 구름처럼 모인다'이며 하늘 천(天), 상서로울 상(祥), 구름 운(雲), 모을 집(集)입니다. 후덕재복(厚德裁福)은 '덕이 있는 사람은 많은 복을 얻는다'란 뜻입니다. 두터울 후(厚), 큰 덕(德), 마를 재(裁), 복 복(福)입니다.

또 영득대안영(永得大安)은 '길이 편안함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길 영(永), 큰 덕(德), 큰 대(大), 편안할 안(安)입니다.

봄을 맞는다는 '영춘(迎春)'이란 단어를 접하니 조선시대 궁궐 창경궁에 있는 '영춘헌(迎春軒)'이 생각납니다.

영춘헌(迎春軒·오른쪽)과 집복헌(集福軒).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경궁관리소

영춘헌(迎春軒)은 주로 후궁들이 거처하던 내전(內殿) 건물입니다. 물론 임금도 거처합니다.

정조가 즉위 후 이곳에서 자주 머물며 독서실 겸 집무실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내전의 접대 공간이었던 양화당(養和堂)이 편전(便殿·임금이 평상시 거처하며 정모를 보던 궁)으로 사용될 때는 그 부속채였습니다. 이후 주로 왕의 서재로 사용되었지요. 정조가 1800년 49세 때 이곳에서 승하했습니다.

영춘헌과 붙은 집복헌(集福軒)은 영춘헌의 서쪽에 5칸으로 연결된 행각입니다. 두 건물은 행각으로 연결돼 한 건물처럼 보이지만 독립된 건물입니다.

이곳은 1735년(영조 11년) 1월 사도세자가, 1790년(정조 14년)에 6월 순조가 탄생한 곳입니다.

오늘 봄비가 많이 내려 대지를 흠뻑 적셨습니다. 이 비에 의미를 부여하자면 '감우균점(甘雨均霑)', 즉 단비가 대지에 고르게 내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금 세차게 내렸지만 온 대지에 생명이 움트는 영양제 역할을 하겠지요. 곧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다가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