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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속담 순례]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41)···왜 그럴까?

정창현 기자 승인 2024.11.22 22:47 | 최종 수정 2024.11.23 01:53 의견 0

농어업을 중시하는 더경남뉴스가 농업과 어업과 관련한 속담(俗談)을 찾아 그 속담에 얽힌 다양한 의미를 알아봅니다. 속담은 민간에 전해지는 짧은 말로 그 속엔 풍자와 비판, 교훈 등을 지니고 있지요. 어떤 생활의 지혜가 담겼는지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오늘(22일)이 24절기 중 20번째인 소설(小雪)입니다. 첫눈이 온다는 뜻인데 겨울로 들어선다는 것이지요. 이미 입동(立冬·19번째 절기)은 지났습니다.

소설 절기의 농사 속담으로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가 있습니다.

이 속담은 '소설 추위'가 농사에 좋다는 말입니다. 속뜻을 덧대면 이 무렵 날씨가 추워야 '보리 농사'가 잘 된다는 겁니다.

요즘엔 보리를 많이 심지 않으니 이 속담의 의미가 많이 퇴색됐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속담의 유래와 뜻풀이를 풍족하게 한 글은 전무합니다.

소설 절기에 왜 빚까지 내서 추운 날씨가 되기를 바랄까요.

기자가 농군이던 집안 어른들과 연세 지긋한 분들의 지난 언급, 농사를 지어본 경험 등으로 이 속담의 의미를 풀어보겠습니다.

지난 11일 경남 진주시 진성면 들녘 모습. 벼 걷이를 오래 전에 끝내 벼 그루터기엔 초록색 새싹이 돋았다. 소 먹이용 볏짚도 아직 거둬들이지 않았다.. 정창현 기자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는 속담은 벌레, 즉 해충과 연관시키는 것이 타당할 듯합니다. 기자 개인 생각입니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온난하고 더운 날씨에 기승을 부렸던 병해충이 이 때까지 죽지 않고 꿈틀거리거나 온기가 있는 적당한 곳에서 지내며 살고 있습니다.

이 때까진 큰 추위가 닥치지 않아 벼를 벤 그루터기나 논둑에 각종 병해충이 살아 지냅니다. 따라서 겨울 초입인 소한 무렵에 맹추위가 닥쳐 해충을 몰살시켜야 합니다.

가만이 놔둬도 추운 겨울을 지나면서 다 줄을 건데, 하필이면 소설 절기에 빚을 내서라도 추위를 닥치게 해야 한다고 했을까요.

소설 절기 날씨는 밤엔 영하로, 낮엔 온난한 경향을 보입니다. 해충들이 땅속 깊이 들어가지 않고 지표에서 지내겠지요. 이들이 무방비일 때 맹추위가 닥쳐 얼어죽이는 것이지요. 땅 속에 들어가기 전에 박멸한다는 겁니다.

추위와 병충해에 강한 보리는 해충에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해충 개체수가 줄면 겨우내 자라는 보리에 해를 덜 주고 봄철에 보리가 자랄 때 해를 주는 벌레가 크게 줄어들겠지요. 벼논 말고 과수원 등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엔 불법으로 단속을 하지만 이른 봄에 논둑을 태우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연관돼 있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벼 수확기에 벼멸구가 창궐을 해 벼농사 피해를 많이 봤습니다. 겨우내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부에서 살던 벼멸구가 내년 5~6월에 다시 바람을 타고 다시 날아오겠지만 동면하며 겨울 추위에 죽지 않는 것도 있겠지요.

소설 절기는 맹추위가 올 여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 소설 무렵엔 기온이 급강하 합니다. 얼해도 다음 주부터 영하권에 접어든다는 기상 예보입니다.

또한 소설 즈음에 바람이 세게 부는 편인데 이때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하고, 추위도 '손돌추위'라고 합니다. 중국 고사에서 강한 바람을 이용해 죽을 고비의 왕을 구했다는 바람에서 유래했습니다.

바람이 제법 세 뱃사람들은 이 무렵에 배를 잘 띄우지 않을 정도로 바람이 강하게 붑니다.

첫눈이 온다는 절기에 바람까지 세게 부니 '손돌바람'이니 '손돌추위'니 이름을 붙였겠다는 짐작을 합니다.

못 입고 못 먹던 옛날엔 벼 말고 보리는 주식이었습니다. 보릿고개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설 추위'를 빚을 내서라도 사거나 빌려와 해충을 줄이려고 한 것이지요. 절박했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날씨는 소설 절기에도 더운 기가 느껴지는 날이 많습니다. 기후 온난화 영향이 크겠지요.

따라서 농가에서 보리 파종을 거의 하지 않아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는 속담은 이미 사망한 속담으로 봐도 될 듯합니다.

달리 말해 농자천하대본의 옛 시절을 기억과 추억하고, 다시 기록해 본다는 의미 외엔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최근 기상 흐름을 보면 며칠 덥다가 갑자기 기온을 뚝 떨어지는 경우가 잦습니다. 사람 생활엔 불편하지만 맹추위가 며칠간 불어닥쳐 해충을 모조리 저 세상으로 보내면 좋겠지요.

맹추위를 빌려와 해충을 죽여 병의 요인을 줄이려고 한 우리 조상들의 농사 지혜에 박수를 보내며, 올해도 남은 소한 절기에 그렇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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