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계간 '문학과창작' 발행인 겸 편집인이고 '문학아카데미' 대표인 박제천 시인이 별세했다. 향년 78세
12일 문학계에 따르면 박 시인은 지난 10일 오전 3시 서울 혜화동 자택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뒀다. 그는 그동안 '문학아카데미' 대표로 있으면서 창작시 수업을 통해 후학 시인들을 양성해왔다.
박 시인은 문학의 산실인 동국대 국문과에서 수학했으며 1966년 문예지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데뷔했다. 1975년부터 연시집 '장자시집' 3권을 펴냈고 '심법(心法)', '율(律)', '달은 즈믄 바람에', '너의 이름 나의 시', '나무 사리' 등 17권의 시집을 냈다.
그는 '장자시', '노장시편' 등을 통해 노장사상의 정신을 시에 대입해 현대적으로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일련의 시 작업으로 현대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윤동주문학상, 월탄문학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고인은 또 1994년 문학아카데미를 설립해 시인 후배들을 양성하면서 현재까지 계간 문예지 '문학과창작'(통권 178권)을 발행했다.
동국대·추계예대·성균관대 강사, 경기대 문창과 대우교수, 동국문학인회 회장, 동국대 문창과 겸임교수, 동국대 문예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출강,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 출강 등 꾸준히 대학 강단에서 섰다.
유족으로는 아들 박진호(재미화가) 씨와 며느리 칼리 아이든(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딸 박수진 씨, 사위 이일구(애플코리아 이사)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5호실(2층)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14일 오전 7시다. 장지는 충남 천안공원묘원이다. 문의 02-2072-2020
한편 서울대 장례식장은 장례문화 개선을 위해 오후 10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조문객 방문을 제한한다.
■박제천 시인의 시
<하늘 애인>
어쩌다 보니 짐승세상에 산다
눈뜨자마자 개천 속에 뛰어들어 붕어나 가재로 살아도
메기는 물론 각종 천적이 달려들고
땅으로 기어 올라가도 온갖 벌레며 짐승,
눈감고 살길을 찾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마음속에 사는 열두마리 짐승이
저마다 손을 내밀고 달려든다
가까스로
낙타 털옷을 입고 잠 속의 사막을 떠돌아도
태생의 살덩어리 추위는 감당할 수 없구나
이 우주, 이 끔찍한 화탕지옥,
그래도 믿고 살 길은 너밖에 없으니···
하늘
애인아, 하염없이 너의 별들을 동무삼아 견딘단다
<비천(飛天)>
나는 종이었다. 하늘이 내게 물을 때 바람이 내게 물을
때 나는 하늘이 되어 바람이 되어 대답하였다. 사람들이
그의 괴로움을 물을 때 그의 괴로움이 되었고 그이 슬픔
을 물을 때 그의 슬픔이 되었으며 그의 기쁨을 물을 때
그이 기쁨이 되었다.
처음에 나는 바다였다. 바다를 떠다니는 물결이었다.
물결 속에 떠도는 물방울이었다. 아지랑이가 되어 바다
꽃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싶은 바램이었다.
처음에 나는 하늘이었다. 하늘을 흘러다니는 구름이
었다. 구름속에 떠도는 물방울이었다. 비가 되어 눈이
되어 땅으로 내려가고 싶은 몸부림이었다.
처음에 그 처음에 나는 어둠이었다. 바다도 되고 하늘
도 되는 어둠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깃들어 있
는 그리움이며 미움이고 말씀이며 소리였다.
참으로 오랫동안 나는 떠돌아다녔다. 내 몸 속의 피와
눈물을 말렸고 뼈는 뼈대로 살은 살대로 추려 산과 강의
구석구석에 묻어 두었고 불의 넋 물의 흐름으로만 남아
땅속에 묻힌 하늘의 소리 하늘로 올라간 땅 속의 소리를
들으려 하였다.
떠돌음이여 그러나 나를 하늘도 바다고 어둠도 그 무
엇도 될 수 없게 하는 바람이여 하늘과 땅 사이에 나를
묶어두는 이 기묘한 넋의 힘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게
하는 이 소리의 울림이여.